【プロフィール】
プロフィール

林 玉順 私は在日コリアンの3世として埼玉県熊谷市で生まれました。
生まれ育った町は周りに多くの在日コリアンが住む場所で、幼い頃から歌を歌うのが大好きだった私は近所のハルベ(おじいさん)、ハンメ(おばあさん)たちの前でよく歌をうたっていたそうです。
幸せな幼年期を送った私は、何の疑問も持たずに民族学校に入学します。
小・中・高と通った民族学校で多くの素晴らしい先生、友達に囲まれながら大好きな歌にのめり込む少女がそこにいました。
人に自分の歌を聴いてもらうのがうれしくて、学校でも家でも大きな声で歌ばかり歌っていたあの頃を、今も懐かしく思い出します。
歌好きな私は当然のように毎年開かれる芸術コンクール等に参加し、多くの賞をもらいました。
でも、なかなか優勝できず悔しい思いをしたことも覚えています。


そんな私が一生歌を歌いながら生きて行こうと思ったのは、やはり高校2年生の時に金剛山歌劇団にスカウトされたのが大きなきっかけになったと思います。
在日コリアンのアーティストが集い構成されたこの劇団に、私は高校卒業と同時に入団しました。
劇団での日々は辛いことも沢山ありましたが、素晴らしい仲間との出会いや技術を磨く私には充実した日々でした。
本国のワン・ソナ先生やクラッシック歌手の日比啓子先生、中沢桂先生に師事しながら数多くの舞台でソリストとして活躍し、そんな私を応援してくれた人々との出会いが、今の私を形成してくれたのだと感謝の気持ちでいっぱいです。


しかし劇団で充実した日々を送っていた私にも退団する日が来ました。
多くの反対はありましたが、優しい旦那様と結婚した私は子供に恵まれました。
そんな私にはどうしても子供を置いて家を空けることが出来ませんでした。
そして私は歌手ではなく母として生きようと決断しました。
いつか必ず舞台に戻ると心に誓って。
それからの私は母としての奮闘の日々でした。
舞台で歌いたい気持ちは無かったと言えば嘘になりますが、子供たちの成長を見守る私は幸せでした。


こうして数年が過ぎ子供たちも成長した頃、コリアの芸術を愛する人々が集まりプロダクションを発足しようと言う話が出ました。
私は迷うことなく発足人の一人となりYUMEプロダクションの一員となり、数年ぶりに歌手活動を始めました。
こうして歌手活動を再開した私は今年に入り、故郷の童謡を歌う民族学校のボランティア公演を企画して始めました。
全ての事を一人でやらなければいけないので、初めは大変でした。
でも、私の歌を聴いて喜んでくれる子供たちの顔を見た時、私の中で何かが変わりました。
日本で生まれ育った子供たちに在日コリアンとしての誇りを持って貰いたい、まだ見たことは無いけれど故郷の風景を思い浮かべてもらいたい。
飾るのではなく自分らしく伝えられれば・・・


今はステージに立つと耳元に成長した息子と娘の声が聞こえます。
〈オモニ、歌の仕事がんばってね〉、〈今日は上手に歌えた?〉
暖かい家族に支えられながら、歌手としてステージに立てる喜びが今の私の宝物です。
そして今日も私は待っている人々に会う為に家を出ます。
家を出て空を見上げると、青空が広がっていました。
私は歌を口ずさみます。
風に乗り故郷まで届く事を願い口ずさみます。
そして前を見て歩き始めます。
私の歩く一歩は小さいけれど、前に向かって歩きます。
一歩、そして、また一歩と・・・


この度2003年10月にCDをリリースする事になりました。
私を支えてくれている多くの人々のおかげで実現することが出来ました。
子供だけではなく大人の人にも目を閉じて感じてほしい。
そんな思いを故郷の童謡に込めて歌いました。
まだまだ未熟な私ですが、これからも歌い続けて行きたいと思います。
皆様、こんな私ですがこれからも宜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






프로필(profile)

저는 재일 코리언(corean)의 3세로서 일본 사이타마현(埼玉県) 쿠마가야시(熊谷市)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 자란 마을은 주변에 많은 재일 코리언(corean)이 사는 장소로서 어릴 때부터 노래를 부르는 것을 아주 좋아한 저는 근처의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모시고는 자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행복한 유년기를 보낸 저는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고 민족학교에 입학합니다.
민족학교에서 많은 멋있는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아주 좋아하는 노래에 빠져 드는 소녀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사람에게 자신의 노래를 들리게 하는 것이 기뻐서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큰 소리로 노래만  부르고 있었던 그 시절을  지금도 그립게상기합니다.
노래 를 아주 좋아했던 저는  매년 열리는 예술 콩클(contest) 등에 참가하고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그런 제가 일생 노래를 부르면서 살아 가자고 생각한 것은  고등학교2학년때 금강산(金剛山) 가극단의 스카우트(scout) 가 큰 계기로 되였다고 생각합니다.
재일 코리언(corean)의 아티스트(artist)들이 모여 구성된 이 극단에  저는 고등학교졸업과 동시에 입단했습니다.
수많은 무대에서 솔리스트(soloist)로서 활약하고 그런 저를 응원해 준 사람들과의 만남이  지금의 저를 형성해 준 것이라고 감사의마음으로 가득찹니다.
그러나 극단에서 행복하게 가수생활을 하고 있었던 저에게도 퇴단하는 날이 왔습니다.
많은 반대는 있었지만  행복한 결혼을 한 저에게는 아이가 태여났습니다
그런 저에게는 아이를 두고 집을 비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수가 아니라 어머니로서 살아갈려고 결심했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무대에 돌아오리라 맹세하면서・・・
그때부터 저의  생활은 어머니로서의 분투의 날이었습니다.
무대에서 노래 부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지만 어린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저는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 어린이들도 성장했을 때  코리아(korea)의 예술을 사랑하는 교포들이 모여 프로덕션(production)을발족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가수활동을 다시 시작한 저는 올해에 들어가고 고향의 동요를 부르는 민족학교의 자원봉사(volunteer) 공연을 기획해서시작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저의 노래를 들어 기뻐해 주는 어린이들의 얼굴을 보았을 때  저의 가슴속에서  무엇인가가 바뀌여졌습니다.
불행하게도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어린이들에게  재일 코리언(corean)으로서의 긍지를 안겨주고 싶었고 아직 본 적도 없는그리운 고향의풍경을 내노래를 통하여 알려주고싶다.
꾸미는 것이 아니게 자신답게 전해줄수있으면 ・・・
지금은 무대에 서면 귓 전에 성장한 아들과 딸의 소리가 들립니다.
<어머니노래 열심히 해서>, <오늘은 능숙하게 노래할 수 있었니?>
따뜻한 가족의 떠받침을 받아 가수로서 무대에 서는 기쁨이  저의 제1의보물입니다.
 오늘도 저를 기다려주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집을 떠납니다.
집을 나가서 하늘을 우러러 보면  푸른 하늘이 뻗쳐 있었습니다.
저는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바람을 타고 고향땅까지 울러주기를 바라며 노래합니다
그리고 앞을 보면서 걷기 시작합니다.
제가 걷는 한 걸음은 작지만  앞을  향해서 걷습니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

이번 2003년10월에 CD를 릴리스(release) 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떠받쳐 주는 많은 사람들의 덕택으로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뿐만아니라 어른들도 눈을 감아서 들어주었으면 합니다.
나의 모든 마음을 고향의 동요에 담아서 노래 불렀습니다.
아직 미숙한 저이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노래 불러 가겠습니다.
여러분 ! 이런 저를 앞으로도 응원해주시기바랍니다.

                                임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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